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뒤에야 가슴이 먹먹해지는 영화가 있다. 일렁이는 파도처럼 여운이 남는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그렇다. '아무도 모른다'가 그랬고, '사후'가 그랬다. 2시간동안 마음속으로 고요히 들어와 작은 돌멩이를 던지고 간다.
하로카즈는 '죽음'이라는 소재를 반복해서 들먹이지만 매번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과
쓸쓸함과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을 그려낸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두개의 장면이 있다.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숏을 연상시키는 식구들의 식사장면, 그리고 시골집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다.
허리를 숙인 카메라가 가족의 식사장면을 응시한다. 십수년전 바다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세상을 떠난 장남의 기일. 은퇴한 의사이자, 고집불통인 할아버지의 집에 모여든 가족들의 대화가 정겹지만은 않은 것은 그들이 공유한 '죽음'의 기억때문이다. 아무리 다른 소재를 꺼내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말은 결국 잃어버린 장남으로 귀결한다. "그 녀석이 살아있었더라면..." 세상을 떠난 아이의 방을 아직도 치우지 않고 고히 간직하고 있는 두 노인에게 장남의 빈자리는 다른아이들로는 채워지지 않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감'일터.
웃음많고 밝은 어머니의 진심이 드러나는 장면은 집안에 들어온 나비를 쫓는 모습에서다. 넋이 나간듯 나비를 쫒는 모습은 그렇기에 더더욱 인상적이다. 가족의 상처는 1년의 한번씩 수면밖으로 드러난다. 웃고 떠들고, 밥을 꼭꼭 씹어삼키지만, 조금만 건드리면 그 상처는 툭하고 터져나온다. 가족의 짧은 식사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네들의 삶을 들여다보게된다. 서로에게 쉽게 상처를 주고,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깊은 곳을 후벼판다.
시골집을 향하는 오르막 길. 영화의 시작과 함께 아이와 료타 부부가 오르고, 장남의 묘소를 찾으러 가며 노인과 료타 가족이 오른다. 1박 2일의 짧은 방문이 끝난뒤 아들내외를 떠나보낸 쓸쓸한 노부부는 또 오른다. 유난히 힘겨워 보인다. 노부부는 아들이 언제 다시 올런가 그날을 기다리지만, 료타 내외는 이제 1년뒤에나 오면 되지 않을까 되뇌인다.
영화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롱테이크를 구사하지만 그 느릿한 전개는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돕는다.
영화의 9할이 넘는 시간동안 꼼꼼히 묘사되는 가족의 1박 2일은 너무나 소중해서 버리고 싶은 장면이 하나도 없다. 엄마와 시집간 딸은 티격태격 다투며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은 먹을 것을 손에 쥐고 집주변을 뛰어다닌다. 아빠와 아이들은 수박을 깨뜨린다며 씨름을 하고, 푸짐한 오찬을 마친 남편은 낮잠을 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우리 인생의 찰나의 순간을 영화를 통해 잡아낸다. 우리의 삶이 이랬었지 하는 깨달음. 그의 영화가 주는 선물이다.
영화가 끝나고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의 계절이 지나면 봄날의 나비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나비를 보면 영화속 풍경이 떠오를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려낸 성기고도 농밀한 '풍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