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24일 오후 시사회장이었던 용산 CGV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1회로 제한된 기자, VIP시사회에 씨네필들은 정신없이 모여들었고, 표를 구하기 위한 다툼이 어찌나 치열하던지, 프리패스로 들어가는 스스로가 미안할 정도였다. 시사일을 하루 앞두고 깐느의 초청장이 날아든 탓인지, 취재열기는 기이할 정도로 뜨거웠다.>

- 스포일러 주의 / 영화를 보신분만 읽어주시길 -

흡혈귀는 빛아래서는 살수 없고, 피를 마셔야 사는 존재. 아프리카의 백신개발험을 자원했던 상현은 500명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아 뱀파이어가 되는 저주에 걸린다. 죄악을 멀리해야하는 신부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살아가야하는 흡혈귀의 공존. 이 남자의 딜레마는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다.

어릴적 버려진 집에서 오누이처럼 살아온 병신같은 남자와 아내가 되는 여자. 엄마로 불러온 이가 시어머니가 된 태주. 그녀는 일상이 지긋지긋하다. 억눌러온 성적 욕망을 표출할 곳을 찾지 못해 몽유병을 빙자해 밤마다 맨발로 거리를 달린다.

남모를 결핍과 고통을 안고 있던 두 남녀는 첫눈에 서로에게 어렴풋이 끌린다. 친구의 아내와 신부의 만남. 터부를 깨뜨린 이 만남은 그만큼 더욱 격렬하다. 수요일마다 태주의 집에서 벌어지는 마작 모임. 자신의 몸을 훑는 남자들의 탐욕스런 시선도 지긋지긋하던 그녀는 상현에게 몸을 맡긴다. 거리를 달리던 어느 날 밤, 자신에게 신발을 벗어준 그 남자에게 그녀는 온몸을 던진다. 박찬욱 감독은 '은밀한 욕망의 전주곡'이었던 테레즈 라깽을 보면서 이 주제를 구상했다고 한다. 격렬한 살풀이는 그들의 억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이다. 욕망의 노예인 인간이 참혹하게 까발려지는 순간이다.

상현은 태주에게 점점 빠진다. 그녀의 멍투성이 다리를 보고 그는 힘껏 짓눌러온 '살의'를 처음으로 드러낸다. 병원에서 피를 훔쳐마시며 연명하던 그는 결국 친구를 묻으러 가는 낚시 여행을 허락한다. 호수아래 '태주의 족쇄'를 무거운 돌로 짓누르고 돌아온 이들은 끊임없는 가위에 시달린다. 아들의 죽음에 시어머니는 쓰러져버리고, 가족의 공간이었던 그 남루한 집은 태주와 상현의 공간이 된다.

어느날, 태주의 입에서 거짓이 탄로된다. 남편의 폭력이 아닌 자해의 흔적으로 자신이 친구를 죽였음을 알게된 상현은 격렬한 다툼끝에 태주의 숨을 끊어놓는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선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 자신의 피. 흡혈귀 커플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거치디 거친 그녀의 본성. 흡혈귀가 된 그녀는 밤마다 '먹이사냥'을 나선다. 태주의 고통은 점점 커진다. 죄악의 폭주를 눈뜨고 지켜볼 수 없는 그과 태주의 다툼은 잦아진다.

치정과 살인의 흔적을 지울수 없는 상현의 고통은 점점 심해지고, 영화는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태주의 피 한방울을 우연히 마시게된 시어머니가 눈꺼풀과 손가락 끝만으로 이들의 살인을 고발하고,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은 수요일 모임 멤버들의 목숨까지 앗아버리게 된다. 상현은 공포에 몸부림치는 여자의 눈빛을 보고 마음의 결심을 내린다. 고통의 굴레를 벗어버리겠다고.

거침없이 척척. 상현의 결심은 확고했고, 실행은 치밀하다. 지울수 없을 만큼 많은 피를 손에 묻힌 자신을 아직도 병을 고칠 수 있는 성자라 믿는 신도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이들의 텐트에 뛰어들어 한 여인을 겁탈한다. 그리고 태주를 속인다. 상현은 태주와 함께 종말을 위한 여행을 떠난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으로...

빛이 있으매 어둠이 있다. 뱀파이어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밤의 공간을 집요하게 비춘다. 하지만, 인물과 배경의 명암은 또렷하고, 피의 붉은색은 더욱 도드라진다. 영화의 마지막, 빛을 향해 떠난 이들을 그린 화면은 외려 어둡게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온 이들은 더이상 살 수가 없다. 이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빛은 그래서 어둡고 흐린 화면 속으로 사그라든다.

박찬욱 감독은 아예 작정을 한 듯 싶다. 박쥐는 그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기교를 다 쏟아부은 영화다. 보는이의 마음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불안정한 카메라 구도, 섬뜩하리만큼 공을 들인 미장센. 밤의 주택가를 날아다니며 벌이는 이들의 다툼도 몽환처럼 아름답다. 인물의 감정선을 쫒아가는 의상과 소품도 너무도 촘촘하게 짜여있어 숨이 막힌다.

어두운 주제를 다룬 이작품이 가끔씩이나마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송강호'의 존재 덕분이다. 논란을 일으킬만한 노출을 감안하면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이 작품에 걸었을지. 김옥빈의 발견은 가장 큰 수확이다. 눈아래 깊게 패인 그림자, 그녀는 태주 그자체다. 격렬한 감정의 기복을 놀라울 정도로 잡아낸다. 이렇게 연기, 연출, 각본의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박쥐는 재미에 관해선 분명 호오가 갈릴 영화지만, 완성도에 있어선 결코 보는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 영화의 영어타이틀은 'Thirst'. 영화를 보는 내내 목이 바짝바짝 마른다. 피를 갈급하는 남자를 보면서, 족쇄에서 풀려나자마자 솔직하게 욕망을 분출하는 불안불안한 여자를 보면서 이 밤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박쥐'는 어두운 인간의 속성을 2시간 스크린속에 새겨낸 그로테스크한 목판화 같은 작품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그럼 도대체 왜 집을 나오셨습니까?"
  "그림을 그리려고요"
  나는 오랫동안 그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 무렵의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였고, 내 눈에는 그가 중년 남자로만 보였던 것이다. 나는 다만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나이 사십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더 이상 꾸물거릴 수 없었던 거요"
  "전에도 그림을 그린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렸을 때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화가가 되면 가난에 쪼들린다고 강제로 나를
장삿길로 들어서게 한 거요. 그래서 한 1년 전부터 조금씩 그리기 시작하여 그 동안 줄곧 밤에 그림 공부를 하러 다녔죠"
  "그럼 부인에겐 클럽으로 브리지를 하러 간다고 하고 당신이 갔던 곳은 거기였군요?"
  "그렇소"
  "그렇다면 왜 그렇다고 솔직히 말씀 안 하셨던가요?"
  "나만의 비밀로 해두고 싶어서지요"
  "그래,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직 안 돼요. 그러나 이제 그려 보일 거요. 그러니까 이렇게 파리까지 찾아온 것 아니오.
런던에선 내 희망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곳에선 틀림없이 희망이 이루어질 거요"
  "하지만 당신 같은 나이에 시작하여 과연 결실을 볼까요? 대개는 17, 8살부터
시작하는 게 아닙니까?"
  "나는 18살 때보다 지금이 더 머릿속에 잘 들어와요"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아십니까?"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길가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렸는데, 그렇다고 그들을 쳐다보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얼마 후 그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대답을 했다.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니까"

서머셋 몸의 걸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집을 뛰쳐나간 사내, 찰스 스트릭랜드를 이해해왔던 나였다. 하지만 어느덧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십대 남자가 되어가는 스스로를 바라본다. 그래도 나는 그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중년의 사내에게 재차 '사회인 찰스 스트릭랜드'를 버릴 수 있냐고 묻는 조급한 남자처럼... 점점 스스로에게 되묻는게 된다. 증권중계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던 사내는 어디에 있냐고.
  
트랙백 0  |  댓글 0  |
사용자 삽입 이미지

18일 저녁 8시 명동성당. 어스름이 짙어졌다. 체감온도는 낮보다 떨어져 영하 5도에 이르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김수환 추기경을 위한 조문 행렬은 줄어들기는 커녕 늘어나고 있었다. 명동 블럭을 세바퀴나 두른 인파는 3km에 달했다.

지팡이를 짚고 선 흰머리의 할머니, 장난감을 들고서 철모르고 엄마와 함께 온 아이도 있었다. 명동거리 한복판에 이들에게 따듯한 물 한잔 대접하려 몇 시간째 종이컵에 주전자를 기울이는 청년도 있었다. 곱게 단장한 검은 조복차림으로 눈물을 훔치는 여인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아픈 다리를 주무르고 앉았다 일어서며 스트레칭을 했다. 3시간을 기다려 겨우 명동성당을 눈 앞에 두게된 60대 여인은 "오늘 밤 12시까지 조문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오늘 보지 못하면 내일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한편 고인을 배웅하기 위한 유명인사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다. 복잡한 인파를 뚫고 명동성당의 정문 앞에 도착한 검은색 대형 차량들에선 정,재계 인사와 스타들이 내렸다. 사전에 예약을 마친 이들은 신부님들의 안내에 따라 신속하게 성당으로 들어섰다. 고인 앞에 서자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 눈물을 훔치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측근 20여명을 대동하고 나타난 전두환 전대통령처럼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발언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급하게 이곳에 나타나 형식적으로 조문을 마치고 떠나는 이도 있었다. 이런 새치기 조문은 조금이라도 이름을 알만한 이들이라면 탤런트, 정치인, CEO등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밤 12시, 명동성당의 정문이 닫히기로 예정된 시각이 됐다. 추위에 떨며 고인에 대한 추억을 나누며 서로의 손을 잡고 기다려온 이들은 아직도 수천명에 이르렀다. 결국 1시가 넘게까지 문은 닫히지 않았다. 오랜시간을 기다려 짧은 조문을 마친 이들은 흡족한 표정으로 집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곳을 찾은 이들의 수는 3일만에 24만명을 넘어섰다.
  
트랙백 0  |  댓글 0  |
 이전  12345 ... 48   다음 

fotowall :: ncloud RSS Feeds today : 5   yesterday : 15
total : 38,081